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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에 로망 한 두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를 조금 더 있어보이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누구나 인생에 버킷리스트 한 두가지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여행을 다니며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여러가지가 있었고,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버킷리스트가 잔뜩 남아있지만 오늘은 내가 실현시킨 것 한가지를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2015년도에 나는 유럽을 총 두번, 각 2개국씩 돌아다녔었다. 내가 처음 발을 딛었던 유럽의 도시는 이스탄불이었다. 라마단기간의 이스탄불에서 프라하로 넘어가던 날이 내 인생에서 꼭 한번쯤은 한달살기를 해보고 싶은 국가가 생기던 날이었다. 짧게 프라하에서 지내면서 프라하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유명한 근교도시인 체스키 크룸로프도 포기하고 프라하에 모든 일정을 쏟아부었었다. 프라하의 예쁜 노천카페에서 동화같은 뷰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여기서 컬러링 북 색칠을 하면 정말 좋겠다고.


그래서 나의 여행지에서의 로망 하나가 추가되었다. 예쁜 풍경이 보이는 노천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컬러링 북을 색칠하는 것 이었다. 몇 달 후에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자 마자 열심히 발품을 팔아 작은 컬러링 북과 고체물감을 살 수 있었다. 워터브러시는 내가 갔던 백화점의 작은 미술코너에서는 찾을 수 없어서 파리의 이 곳 저 곳을 걸어다니다 발견한 화방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나의 로망 실현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모두 구매한 후 매일같이 식사를 할 때 마다, 카페에 앉을 때 마다 나의 컬러링북과 고체물감 파레트를 꺼내고 싶었지만 박물관 구경도 하고싶고,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에 재대로 앉아 컬러링 북을 꺼내 여유를 즐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자는시간을 쪼개 숙소의 침대에 기대앉아 컬러링 북을 색칠해 보았지만 그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꼭 로망을 실현시키겠노라 다짐하며 이지젯항공을 이용하여 이른아침에 파리에서 이탈리아의 나폴리 공항으로 넘어갔다. 


나폴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페리를 타고 소렌토로 이동했다. 소렌토에서의 첫 날, 눈을 어디에 두어도, 셔터를 어떻게 눌러도 예쁜 풍경사진이 잔뜩 나오는 소렌토에 감탄하기 바빠 컬러링북은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밤 늦게 숙소로 돌아가 그제서야 생각난 컬러링 북을 꺼내며 내일은 꼭 컬러링북을 한번은 꺼내보겠노라 다짐했고,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셔틀버스를 타고 포지타노로 넘어가서도 넘어가자마자는 다양한 사건사고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한참을 사진을 찍느라 또 다시 컬러링북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바닷가에 도착해서 실컷 사진을 찍은 후 식사를 위해 바닷가에 있는 레스토랑에 앉아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사진에 보이는 예쁜 레몬소르베까지 다 먹고나자 그제서야 컬러링 북 생각이 났다. 레스토랑의 레몬소르베는 시각적으로도 미각적으로도 완벽했고, 눈 앞에 보이는 바다의 풍경은 말로 충분하게 묘사하기 힘들만큼 아름다웠으며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은 컬러링북과 작은 파레트를 둘 수 있을만큼 충분히 컸다. 드디어 나는 이태리 포지타노의 예쁜 바닷가의 레스토랑에서 더할나위없이 예쁜 포지타노의 아말피 해변을 바라보며 여유있게 컬러링 북 색칠을 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원하는 만큼 실컷 컬러링 북을 색칠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다리가 간질간질 했다. 그제야 다리를 살펴보니 컬러링 북 색칠에 집중한 동안 온 종아리가 모기에 셀 수도 없을만큼 모기에 뜯겨있었다. 그 자국이 모기자국이 아니라 샌드플라이에 물린 자국이라는 사실을 로마로 넘어가 며칠간 긴 원피스로 다리를 가리고 로마를 즐기다 로마를 떠나던 날 저녁에 들어간 저렴한 중식당의 동앙인 아저씨 덕분에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었던, 그 때는 도꺠비 방망이마냥 울퉁불퉁 울긋불긋 해진 다리때문에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에피소드도 얻을 수 있었다. 


며칠 전 외장하드 사진정리를 하다 이 사진을 보자마자 내 종아리를 보았다. 아부다비로 돌아가서도 한동안 사라지지 않아 한참을 우울해 했던 샌드플라이 자국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사진을 보며 웃을 수 있게 된 기억은 남았다. 이런 조각조각 남아있는 추억들이 생각날 때 마다 내가 방문했던 도시들을 다시 가보고 싶어진다. 다시 포지타노의 저 레스토랑을 방문해서 샌드플라이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될 그 날을 위해 내일도 나는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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