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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도, 시간도 장소도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여행에서 딱 한가지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날씨이다. 분명 다음주 1주일 내내 날씨가 맑을거라고 해서 여행지를 고르고 가방을 챙기고 티켓을 사서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 날부터 머무는 내내 비가 올 수도 있고, 비가 오는 날을 즐기고 싶어서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 날부터 해가 쨍쨍 한 맑은 날이 계속 될 수도 있는 것이 여행지의 날씨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면 참 많이다녔지만 날씨만큼 내 맘대로 안되는 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날씨가 맑은 날 만이 여행을 하기 좋은 줄로만 알았다. 여행을 다닐 때에 우산이 없는데 비가 오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평소라면 우산이 없이 비를 맞는 걸 신경쓰지 않았지만 여행지에서는 항상 카메라도 가지고다니고, 쇼핑한 것들도 잔뜩 들고다니는 상황에서 비를 맞는다는 건 나에게 엄청나게 걱정스러운 일이었었다.
처음 니콘 D200을 들고 간 홍콩의 맑은 날 사진을 잔뜩 찍다가 어느순간 비를 만났다. 제일 먼저 드는 걱정은 내 카메라가 비를 맞아도 될까? 하는 걱정이었다. 카메라를 산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때 당시에도 이미 D200은 오래된 중고 카메라였지만 막 사진을 배워 사진에 눈을 뜬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재산 1호였다. 내 생각 이상으로 D200은 튼튼했고, 무사히 사진을 찍다 못해 비오는 날에 혹시몰라 챙겨간 작은 접이식 우산 안에서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감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여행지에서 만나는 비에 대한 생각이 확 바뀌었다. 카메라가 비를 좀 맞으면 어때? 하고 비가 오는 날에도 비가 다 들이치는 작은 우산 안에서 거침없이 카메라를 꺼내들었고, 큰 비때문에 발이 묶여도 아무렇지 않게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워싱턴DC에서의 어느 날 아침에는 때아닌 폭설과 폭우때문에 모든 박물관이 문을 열지 않았지만 다음에 또 워싱턴에 오라는 하늘의 계시인가보다 하고 신나게 쇼핑몰을 찾아가 신이나서 다섯바퀴쯤 돌다가 어느순간 갑자기 해가 쨍쨍해져서 박물관이 문을 열어 덕분에 쇼핑몰에 와볼 수 있었다며 즐겁게 박물관을 즐기러 갔다.
프라하는 비가 오면 더 예뻐지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맑은 날의 프라하는 그냥 동화나라같고, 그림같은 느낌이라면 비가 오는 프라하에는 동화나라에 갑자기 말로 설명하기 힘들만큼 예쁜 분위기가 덧씌워진다. 프라하성에서 갑자기 만난 큰 비에 우산도 쓰지 못하고 비를 맞았다. 그 때는 NEX-5T와 함께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그냥 카메라를 비를 맞도록 놔두기에는 불안했고, 비 피할 곳을 찾아 겨우 한 두장정도를 찍을 수 있었지만 프라하성 안에서 바라본 비오는 창밖의 풍경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지난 대만여행에서도 비를 만났다. 비가 제법 많이 쏟아져서 사진찍기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비가 온 덕분에 10월의 대만을 덥지 않게 즐길 수 있었고, 비를 맞으며 야경을 보기 위해 걸어올라간 샹산에서 바라본 구름낀 대만의 야경을 보며 감동할 수 있었으며 비 때문에 들어간 카페에서 엄청나게 맛있는 커피를 만날 수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비는 나를 슬프게 할 수도 있지만, 여행지에서 만나는 비는 나에게 색다른 행복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비가 와도 카메라를 숨길 필요가 없는 방진방적으로 유명한 올림푸스의 카메라를 샀다. 다음번에 프라하에 갈 때에는 갑자기 내리는 비에 어마어마하게 예쁜 풍경을 마주할 때에도 카메라를 숨길 필요 없이 당당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겠지. 그 날을 기대하며 그 곳에 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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